한국中企 성공신화 만든 73세 일본인 가키자와씨
지식경제부 장관상, 은퇴뒤 日기술 전수·시장개척 지원
“한국에서 시작한 제2 인생이 결실을 봐 감개무량합니다.”
일본인 가키자와 구니오 (주)대륙 고문(73)이 대일 무역역조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28일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받는다. 가키자와 고문은 1996년부터 (주)대륙에 몸담은 뒤 이 회사의 차단기를 일본 미쓰비시전기, 후지전기에 납품하는 데 있어 기술과 영업 분야에서 산파역을 했다.
그가 대일무역 역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품소재 분야에서 한국의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 일본 유수 대기업을 개척하는 역할을 해낸 셈이다. 차단기 등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주)대륙은 올해 연매출 484억원 중 130억원을 일본에서 벌어들일 전망이다.
가키자와 고문은 한국에서 사실상 제2 인생을 시작했다. 1961년 입사한 후지전기에서 기술제조부장에 올랐던 그는 1996년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은 뒤 의사로부터 “앞으로 기대 수명은 8년에 불과하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요양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주)대륙 김덕현 회장의 삼고초려 덕분이다. 1990년대 초반 후지전기에 견학을 갔다가 가키자와 고문을 만난 김 회장은 그가 은퇴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를 찾아갔다. 일본에 비해 뒤처진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본 기술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건강 문제로 고사하던 가키자와 고문도 김 회장의 끈질긴 노력에 결국 (주)대륙의 기술고문을 맡기로 했다. 가키자와 고문은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각오로 김 회장의 제안을 수락했다”면서 “당시 항공료와 체재비를 제외한 일체의 급여를 받지 않고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단기 제조의 기술적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지전기의 에코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공장의 전력 사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주는 에코시스템의 도입은 일본 미쓰비시전기와 후지전기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대륙이 28일부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전기박람회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스마트 브레이커’도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전력 사용량의 실시간 계측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스마트 브레이커는 가키자와 고문을 필두로 15명의 연구원들이 3년간 주말을 반납해 가면서 개발해 낸 역작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일본 전기업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가키자와 고문이 일본 바이어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키자와 고문은 “한국 직원들이 나의 말을 잘 따라줘서 일이 잘 진행됐다”면서 “일본과 달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다 보니 지병이었던 심장병도 거의 완치됐다”고 말했다.
1996년 8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그는 15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다. 한국의 100대 명산 중 이미 76개 산에 올랐다는 그는 전남 영암의 월출산을 최고 산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산 중에 월출산, 내장산, 설악산이 인상적이었다”면서 “매주 말 한국 직원들과 등산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지인들의 기부금을 모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건설할 정도로 왕성한 자원봉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주)대륙이 일본 시장을 뛰어넘어 세계적 전기제품 제조기업으로 발전하는 게 여생의 꿈입니다.” 올해로 73세를 맞은 가키자와 고문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도 식을 줄 모르는 듯했다.
매일경제, 2011.09.27. [박승철 기자] (원문 보기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625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