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철공소 사원,
밤에는 학생
김 회장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원효로의 철공소 사원, 밤에는 학생으로 지냈습니다. 그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여 공업에 대한 기술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대학생이야말로 자신의 주된 본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학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귀중한 장소였습니다.
ODP(Oil Dash Pot)제조에 과감히 도전하다
당시 전기 산업에 많은 대기업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만드는 기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ODP는 전량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ODP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었습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유수의 석·박사들이 제조를 시도하였지만 모두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ODP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뭘 알고 그걸 만들려고 하나’, ‘전기도 모르는 사람이? 얼른 그만 둬.’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년간의 연구로 국내 최초로 ODP의 개발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집념을 가지면 안될 것도 없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보인 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대륙 용인 공장
1981년, 대륙 공장은 용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공장 부지에 도착했을 때는 먼지투성이의 소 축사만이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김덕현 회장과 직원들은 수건을 얼굴에 메고 축사에 달라붙은 먼지와 거미줄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단층짜리 슬레이트 건물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간도 협소해지자, 아버지는 그 사정을 들으시곤 손수 이중 벽의 튼튼한 건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공장에 가 보면, 두 동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몇 년 전에 새로 지었고, 또 하나는 오래되었지만 튼튼한 건물입니다. 바로 이 곳이 김 회장의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건물입니다. 그는 이 건물을 보며 항상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직원들의 식사를 손수 챙기셨던 어머니
김 회장의 어머니는 사원들을 위해 노력한 분입니다. 매일 새벽 4시에 버스를 타고 마장동 우시장(현 마장축산물시장)으로 가서 장을 본 후 공장으로 와서 사원들의 식사를 손수 챙겨 주셨습니다. 아무리 자식의 일이라고 해도 매일같이 새벽에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하는 성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사원들을 보며,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사원들 중에서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수입대체우수효과업체의 대표 중소기업,
대륙공사
1984년 3월 봄,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륙공사가 수입대체우수효과업체의 대표 중소기업으로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은 외국에서 수입하여 한국에서 쓰던 상품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하게 된 업체를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8월의 영빈관에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기업인들과 장관, 차관 국장들로 가득했습니다. 전두환 전(前)대통령은 대륙공사의 브리핑을 듣고 훌륭한 기업이라며 극찬했습니다. 대한민국 산업의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국가 대표로 중남미에 가다
1985년 7월, 김덕현 회장은 ‘한국 무역 투자 및 합작 사절단(Korea Investment and Trade Mission)’에 중소기업대표 단원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중·남미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중·남미 20일, 미국 20일, 총 40일 가량의 탐방이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람이 산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세계가 아주 넓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탐방은 김 회장의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주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기회를 준 국가에 대해서도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는 이 중·남미 탐방을 다녀오고 나서 더욱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완제품 회로보호용 차단기
배선용차단기와 누전차단기는 거의 국산화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단기 종류 중 ‘회로보호용 차단기’는 100% 수입 완제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회로보호용차단기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고, 견제해야 할 경쟁사도 없었습니다. 시작하기만 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도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회로보호용 차단기에는 ODP가 꼭 들어가야 했는데, 어차피 그것은 이미 대륙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988년, 대륙은 회로보호용 차단기 제작에 주력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폴리에틸렌(PE)밸브를 개발하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수입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PE 밸브를 직접 만들자!’ 고 이야기했습니다.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아시아 최초로 PE밸브를 제조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가와무라 전기와의 인연
가와무라와 대륙은 일 년에 한 번 친선 교류회를 개최한다. 한 번은 한국에서, 그 다음 한 번은 일본에서 격년으로 열립니다. 이 교류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릴 당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김 회장과 가와무라 전기의 오너는 ‘양사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행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너와 오너끼리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양 회사의 사원들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회장은 ‘한일 월드컵도 공동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우리도 두 회사가 모여 축구 시합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류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인 세대를 위한 주식회사 조아
김 회장은 그 길로 당시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던 미국과 일본에 가서 실버 요양 제품을 시찰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조아는 이러한 복지용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조아는 꾸준히 성장하여 동종업계에서 1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폴리텍의 중국 진출, 북경폴리텍
폴리텍이 만드는 PE밸브 중에는 도시가스 배관이 목적인 종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은 기회의 땅인 것입니다. 폴리텍은 2003년, ‘북경폴리텍’을 창립하여 중국 진출을 시작하였습니다.
‘대륙’이라는 이름
“저에게 있어 ‘대륙’은 어릴 적 ‘독립군 투쟁사’를 읽으며 들어온 친숙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광활하게 넓은 대지와 그곳으로 진출하는 높은 도전정신이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대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대륙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물리적인 공간, 즉 발을 디딜 수 있는 광대한 육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세우는 기업 그 자체가 한 개의 드넓은 대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업으로 대륙을 만들겠다는 포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이름을 대륙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의 기술이 곧 우리의 경쟁력
“ODP를 만들면서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이면서도 수입에 의지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상품 수출국에 비해서 못한 것이 뭐가 있기에, 외국에 의지해야 할까요. 우리 기술로 만들 수 있다면 외국의 물건을 수입해 오지 않아도 될 터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물건이 많이 쓰인다면 수입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을 하여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입을 하면 돈은 들겠지만 당장은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쓴다고 해도, 그 기술의 주인은 다른 나라 회사입니다. 자체적인 기술이 없으니 좋든 싫든 상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소비자는 상품에 종속되어버리고 맙니다.“
창조라는 사훈
긴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창조’라는 두 글자의 단어였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가 밟았던 과정대로 하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뒤집어엎어 재편성하고 개선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하지만 ‘창조’라는 단어는 광범위하고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3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바로 실무의 창조, 현실의 창조, 미래의 창조입니다.
첫 번째, 실무의 창조는 우리가 하는 업무를 선배가 했던 대로 그대로 진행하지 말고, 일단 뒤집어엎어 보라는 의미입니다. 새롭게 정리하고효율적으로 바꾸어 보아야 타성에 젖지 않고늘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현실의 창조는 주변 환경을 주의 깊게 보고 개선점을 찾아내자는 의미입니다. 삶을 살다 보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데도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이것은 아주 불합리합니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새로운 개선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세 번째, 미래의 창조는 미래를 설계하고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미래에 대해서 꿈을 가진 것이 인간입니다.지금 이 순간이 힘들지라도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고 창조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사원들에게서 배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의 제 1목표는 이익의 창출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사원들에게 일 한 만큼의 대가를 반드시 주려고 노력하고,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힘씁니다.
다행히 그 노력이 빛을 보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말 속에서,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행간 속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곳에서 근무를 하며 어린 아들을 키웠는데 이제는 그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려 한다거나, 남편이 암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회장님이 도와주셔서 살았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읽을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며 창업자로서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사원들의 말은 아주 유명한 교수나 경영자의 특강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무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강도 유익하지만, 사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고 유익합니다. 저는 사원들에게서 배웁니다”
메모의 힘
“저는 우리에게 없는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겁내지 않고 직접 부딪혀 쟁취해갔습니다. 발로 뛰며 하나씩 귀동냥, 눈동냥을 해서라도 기어코 배워 왔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메모를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축적된 기술들은 현재의 대륙을 있게 만든 동력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기에 관련된 기술자도 아니었고, 관련 학문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집념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평생을 걸쳐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원들의 말은 아주 유명한 교수나 경영자의 특강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무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강도 유익하지만, 사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고 유익합니다. 저는 사원들에게서 배웁니다”
회장이 검소해야 한다
“지금도 저는 포장마차에서 뭘 좀 먹으려고 해도, 항상 돈에 대해 생각하고 검소하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돈에 대한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을 소주 한 잔에 오뎅을 사 먹는 것도 편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제조업을 하는 우리 회사는 공정 과정에서 아주 적은 이익만을 남깁니다. 하지만 기기 하나를 만들더라도 거기에는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사정을 잘 아는 회장인 제가 돈을 허투루 써 버린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라
사람은 죽으면 흙이 되어버립니다. 허무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동안 실패를 두려워하며 아무 것도 안 한다면 가치가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장렬하게 패배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해보는 것. 그것이 주어진 삶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자녀들도, 직원들도 도전 정신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회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회사’
“회사 내 사원수가 50-60명까지는 ‘내 회사’의 직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원수가 더 늘어나니, 더 이상 이 회사가 제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 중소기업 대표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회사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도 변화합니다. 사업 초에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일정 인원이 늘어나면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설립한 회사가 사원들의 삶에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느끼면, 이 회사는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라는 생각에 미칩니다. 그리고 더욱 이 회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탑니다. 눈앞의 이익을 취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우선합니다.”
Dream Society, Dream Company
30년 전, 저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저는 상상하지도 못할 꿈의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 아니 전 세계는 고도성장과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 길을 향해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은 시시각각 달라져서 길을 분간하기 어렵고 급기야는 스스로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거기에 눈을 떼지 않고,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깊이 있게 생각하면 분명히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미래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은 꿈의 회사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의 회사는 무엇일까요? 저는 창조력과 상상력이 합쳐진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창조력과 상상력은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급히 배워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 인연이 있는 사람들, 과거에 있었던 일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느꼈던 교훈과 감정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미래를 만듭니다.
저는 제 삶을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절대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현대사회는 경쟁관계가 얽혀 있는 정글과 같습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내의 소통과 공유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 사건을 함께 겪고서도 다르게 생각하곤 합니다. 이러한 개개인들이 모여 기업을 이룹니다. 그렇기에 기업의 목표 완수를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과 업무를 공유하고,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